2009년 6월 7일 일요일

비/박용하

비는 지붕 위에서 시작되어, 바다에서
다시 시작되어 하늘로 상쾌하게 상승한다
시커먼 구름 뒤의 뭉글뭉글한 햇살로 올라가
여름 下午 폭풍의 아들로 내린다

비는 내린다 올라갈 만큼 멀리 올라간
하늘의 구름 뒤에서 시대의 가장 큰 어둠을 뒤집으며
또다시 지상에 내리어 빛의 물방울을 낳는다

비는 가장 작은 물로 내려
지상의 가장 큰 한발을 소리도 없이 차곡차곡 적시며
사랑의 몸짓이듯 때론 격렬하게
어둠에 불타고 있는 나무와 풀과 도시와
인간의 집들을 적시며 파랗게 불빛 일으키며
여름 벌판에서 겨울 벌판까지
지상의 죽어가는 모든 풀꽃을 일으키며
불타오른다, 이 비는 거의 꺼질 것 같은 나뭇잎의 등불처럼
자신을 지상에 파열하여 사랑의 불꽃을 일으킨다

오! 비는 하나의 거대한 불의 塔
生의 기둥을 쾅쾅 박으며 하늘로 치솟는 나무처럼
지상으로 내려오며 생명의 에너지를 뿌린다

비는 멀리에서 멀리로 흐르는 바다처럼
깊고 높게 자신을 던지며 박토의 땅을 적신다

--박용하 시집<<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중앙일보사p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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